Friday 8 October 2010

원죄. 너는 죄인이어도 나는 더이상 죄인이 아니다.



전병욱 목사의 사건을 대하며
'죄인'이 그토록 요긴한 변명거리로 쓰일 줄, 차마 몰랐다.

괘씸하다.


일단,
원죄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자면
원죄는 틈이다.
신(神)과 인간은 분리되어 있는데 그 사이, 그 틈이 라 명명된 거다.
그래서
죄가 많다는 건 틈이 많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죄가 적다는 건 틈이 좁다는 것이며
죄가 없다는 건 하나님 안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성경적 죄는 규범을 어기는 행위와 같은 잘못이나 악(惡)을 이름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 거한다 하여도 잘못은 가능하다. 하나님 안에 거한대도 인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만으로도 죄사함과 구원이
가능하다.
-내게
교리집 어디에 몇 조 몇 항에 그것이 쓰여 있는가는 묻지 마시라.
나는 대답 못한다. 각 교단별 교리집이 내게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정,
증거가 필요하다면 아쉬운대로 사영리를 참조하시라.-

그러면,
세례를 받았다면
혹은
사영리의 마지막 문장을 읊었다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당신은 더이상 죄인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하는 거다.
헌데,
그런가?
당신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가리켜 원죄에 갇힌 죄인이라 부르고 있지 않는가.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
-잠복이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여인에게,
아니지.
여인을 제외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가 한 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상황 종료.

이제,
예수가 말한 여기에서의 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원죄일까, 잘못일까.
원죄로 읽힘이 마땅할까, 잘못으로 읽힘이 마땅할까.
참고로,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건 1세기 유대사회에선 정당한 행위였다는 걸 잊지 말자.
답은
원죄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댓글에 그 이유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단, "정답은 예수만 아는 것" 같은 당연한 이유는 사절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주욱
이것을 관용의 문제로 간주해왔다.
왜?
그것은 이제부터 당신들이 생각해 봐라!
당신들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병욱 사건'에 '죄인'이 들먹거려지는 거니까.

정리를 하면,
사영리는 엉터리고
-그 이유에 대한 피력은 나중에 하자. 지금 당장은 빠질 진(津) 때문에 내키지가 않는다.-
기독교 교리는 코미디고.
-마찬가지로 '왜'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원죄도 사라지고
'Medium 예수'도 사라진다.

필요가
사라진다.

RyanHartsell, Original Si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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