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7 August 2006

나는, 다윗이 아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한 기회가 여러번 주어졌기 때문인데
아무튼 그러함에도 그는 매번 사울 왕을 죽이는 대신,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 때문에- 당신을 봐준다."
란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다윗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에 대하여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없다."
라는 명제를 가지게 되었다.
허나 우리는 여기에서 구분을 해야한다.
사울을 향한 태도는,
다윗만 가지고 있던 게 아니다.

사무엘을 기억하자.

사무엘은 다윗과 달리 왕권에 도전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윗이 지녔을 법한 어려움
-이를테면 사울을 죽이고 왕좌에 오르면 반역한 왕이 될거고, 또한 왕으로 입지를 굳히고 나서도 정통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거라는.-
따위와는 무관한, 그저 하나님께 합당한 선지자였다.


"사울이 이제는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사울은 내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하였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시기를 간구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사무엘상 15:11, 쉬운성경 譯]


그러나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지 않겠소.
당신은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았소.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소."
[사무엘상 15:26, 쉬운성경 譯]


사무엘은 더 이상 사울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
[사무엘상 15:35 中, 쉬운성경 譯]

위의 세 구절은 사무엘이 사울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


살면서
다윗과 같은 종도, 사울과 같은 종도 만날 수 있었다.
겸손히 주를 경외하는 종을 만났을 때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나누었고,
변절한 종을 만났을 때는 분(憤)을 내고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둘을 늘 다르게 대했다.

나의 태도는 분명하다.
그러니,
내게 왜 다윗이 했던 대로 행하지 않느냐 따져 묻지 말라!
내 역할은 다윗이 아니라 사무엘에 훨씬 가깝다.

I watching you
덧붙임.
나의 분별은 종종 도전을 받는다.
그 분별이 일반인들을 향하고 있으면 별 잡음이 없는데
그것이 목회자를 비롯한 기름부으심과 관련한 이에게로 향하면 도전을 받는다.
그도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이면 잡음이 없는데, 그렇지가 않다면,, 아무래도 문제가 있겠지.
그럴 때면 으레,
'그래서, 말도 못하냐? 난 단지 네가 못 보는 걸 말하고 있을 뿐이야!!'
하고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애당초 사실 전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잡음은 달갑지가 않다.

어제 낮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 동영상 내용이 "주의 종을 함부로 하지 말라" 였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설교 동영상이었다.
제주기행 이후 설교만 나오는 동영상을 보는 걸 스스로에게 금했다.-
기분이 나빴다. 아마도 당한 일이 있어서겠지만, 여전히 내 안의 볼멘소리가 살아있어스리.
아무튼 덕분에 내내 찜찜해 하다가 밤 기도를 하면서 기분이 풀렸다.


덧붙임.
나는 다윗이 아니다.
내가 다윗이 아닌데 다윗 흉내를 내어서 뭣 하랴!
단지 흉내만 내고 있다는 걸 하나님께서 모르실까!
누구를 위해 내가 그와 같은 흉내를 내야만 하는가!
차라리 나는 사무엘이 행한 것에 더욱 가까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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