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8 July 2006

제주기행(紀行)



I. 보라! … 보았느냐?

"보라!"

첫 날, 여장을 들고 도착한 교회에서 기도를 위해 자리에 앉는 차에 들린 첫 음성이었다.

"보았느냐?"

둘 쨋날, 새벽 집회를 위해 나온 예배당에서 기도를 위해 자리에 앉는 차에 들린 두 번째 음성이다.

세 번째 음성도 둘 쨋날 연이어 들었으나 그 음성은 여기에 적지 않겠다.

"보았습니다. 내 주여! 어찌 이를 제게 보이심입니까?"

그 후,
나는 근심에 젖었다.

5일 동안 선교란 이름으로 제주도에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 그곳에서 사역이라 불린 일들은 그닥 나를 어렵게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 새벽 3시 반에 일어나기, 세면의 어려움 등.
그러한 것들은 나를 귀찮게 했을 뿐 어려움을 입히지는 않았다.
허나 집회는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새벽과 저녁. 총 8번의 집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예배.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예배.

그것이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들고 괴로움 속에 빠지게 했다.
그래서 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했다.

주여!



II. 가인의 제사 I.

내가 따라 나섰던 교회는,
청년사역으로 맹위를 떨치는 교회로 예전에 친구 둘이 다른 한 친구를 전도하면서 친구를 내 손으로 인도했던 교회다.
당시 이 교회를 추천한 건 내가 아니었지만 친구는 여기를 가길 희망했고, 나는 기꺼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나는 종종 이 교회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봐 왔었다.
주일에 우리교회에서 받은 영의 양식이 모자랄 때마다 이 교회를 비롯해 몇몇 교회의 설교 동영상을 보아 왔는데
설교만이 아닌, 전 예배를 직접 내 눈으로 지켜보니 "쿵" 하고 가슴이 내려 앉는다.

목격은 아주 우연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집회가 시작되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이었는데 기도가 되지 않아 금새 눈을 떴다.
평소엔 기도가 되지 않아도 눈믈 감고 옆사람의 기도를 들으며 그의 기도가 응답받기를 기도하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눈을 뜨고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눈을 뜨니, 첫 째로 기도하는 청년들이 보인다.
그리곤 단상에 선 목사님이 보였다. 노트북을 보고 계셨다.
또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들려온다.
"오. 주여. 오. 아버지. etc."

'아차!!'

그 광경은 내게 기묘했다.

'어머나!'


기도엔 전혀 관심없는 목회자.
허나 기도를 인도했으니 기도하는 것처럼 보여는 져야겠지.
어차피 저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으니.
뭐가 두렵길래, 눈은 노트북을 보며 입은 쉬지 않고 떠드는가?
다음 순서를 확인하려 했다면 입은 당연히 다물었어야지!!
기도하고 있지 않았으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려 하다니, 참으로 악하도다.

몸 여기저기를 긁적이며 시계를 들여다 보는 것조차 누가 볼까 무서웠던지 뒷짐졌던 왼팔을 단상에 올려 살짝 보고는 다시 뒤로 가져간다.
인도자가 집회 가운데 시간을 체크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몰래 보았다.
아주 자주.
참으로 악하도다.

안경을 꼈다 뺐다 하며 슬쩍 눈을 뜨고 회중을 바라본다.
눈이 워낙 작은 분이라 그런 모션이 없이도 눈감고 기도하는 저들이 알리 없는데
그것이 아니래도 단상 위의 목회자가 기도하는 회중을 보는 게 뭐 어떻다고 그런 모션까지 취해가며 보는 건지,
참으로 악하도다.

아직 나의 목격담은 끝나지 않았다.



III. 가인의 제사 II.

특송.

특송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목회자를 비롯한 회중들을 위한 것인가?

내가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도 할 수 있다.
이 교회는, 후자다.

예배의식에 따르면, 찬송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 하여 회중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특히 시작머리에 그렇고, 끝난 후에는 하기도 하는데 그것마저 금지하는 교회도 있다.
지금 내가 속한 교회는 좀 더 엄격히 지키는 쪽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박수로 시작해 박수로 끝난다.
인사는 않지만 어느 때는 휘슬이 울리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아멘" 이 없다.
말하자면 이것은 "SHOW"다.

이전에 이야기만으로 들었을 때는 조금 이상해도 박수로 영광을 돌리는가보다 했다.
찬송이란 것이 항상 목소리만을 요구하는 건 아니니까.
누구는 목소리로, 또 누구는 몸으로, 누구는 눈으로, 살아있다는 존재만으로도. etc.
이처럼 영광을 드높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헌데, 눈으로 본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설교 전, 그들을 위한 막간극에 불과했다.
예배를 모두 마치고, 2부 행사로 쓰임이 마땅한 그런 광경이었다.

좀 더 심각한 건, 수많은 특송자들이 나왔는데 그 중 남남(男男)으로 듀엣을 이뤄 찬송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찬송이 끝난 후 단상에 선 목사님이
"난 저 팀이 싫어. 싫어."
라며 경멸의 목소리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가 아닌 진담이었다.
그들의 찬송이 아무리 영적이지 않았다 해도, 아무리 그들이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이용했다 해도,
그건 예배 중 목회자가 회중 모두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 했다.
"모두" 란 단어가 불쾌하다면 목회자 한 사람에게만 몰표를 줄까?
아니다.
내가 본 것은 목회자 한 사람만이가 아니다.
거기 모인 모두는 적게든 많게든 그것에 동조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IV. 예수의 이름에 먹칠하다.

예수는 상품인가?

그들은 악했다.
노인의 외로움을 담보로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했다.
그들의 팔을 주무름도 그들의 입에 사탕을 넣어 준 것도 다.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그들을 긍휼히 여김 때문이 아니요, 오직 '열매'만을 위한 수단으로 예수의 이름을 팔았을 뿐이다.

또한,
불신자의 말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들이 듣건 말건 그저 자신의 할 말만 해댔다.
그러면서 싫다하는 이의 뜻을 전혀 존중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불신자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던 거다.

그러면 불신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귀찮게 하는 신.
나를 전혀 귀히 여기지 않는 신.
나를 이용해 먹는 신.
나를 죽음의 두려움에 빠뜨리는 신.
그 정도가 아닐까?

우리는 결국,
주님이 부르신 자를 교회로 안내할 뿐이다.
사람의 말 몇 마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지 않은 자가 주께로 나아올리 없다.
거기에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 온 그를 향한 축하와 기쁨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내 말에, 이 사람이 …." 이건 매우 곤란하다.

베드로는 말 몇마디가 아닌 행동으로 예수를 전도하길 바랬다.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바랬고 그 모습을 통해 감동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길 바랬다.
우격다짐이 아니라 유도였던 거다.
그런데 그들은 우격다짐으로 예수를 증거하고 있었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사랑이 없는 걸 어찌 변명할 것인가?
그건 믿는 게 아니라 믿는다 생각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는다면서 기도도 의뢰도 하지 않는 걸 어찌 변명할 것인가?
그건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리 생각하는 걸 믿는다 할 뿐이다.
엉터리 기도도 기도냐? 엉터리 믿음도 믿음이냐?
그런 그들이 전도랍시고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다니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우리의 자랑이자 기쁨인 사랑의 예수님의 이름에 잔뜩 먹칠을 하며 다니는 거다.


"보라!"
는 명령을 받고 나선 제주 길이었다.
"보았느냐?"
는 물으심에
"어머나!"
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 한 기행이었다.

화가 누그러들지 않는다.



V. 악한 영을 알아보다.

아는 것이 끼치는 영향은 참 크다.

사람을 잘 사귀지 않는 나.
나는 무엇을 알기 때문일까?

"척 보면 안다!" 까지는 아니더래도 곧 잘 사람을 알아채는 나.
이전엔 그저 사람을 잘 본다 정도였는데, 어느덧 영분별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이를 누군가는 매우 신비스레 느끼겠지만 내겐 신비가 아닌 직관과 관찰을 통해 얻은 확률일 뿐이다.
사람의 무의식적 행동을 통해 정보를 얻은 후 그간 읽어 둔 책의 내용들과 직·간접적 경험에 비추어 결론을 얻는 거다.
때문에 결론짓기를 주저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아무튼, 오랜시간에 걸친 그것은 하나의 도식이 되었고 그 도식은 직관으로써 내게 자리했다.

제주도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 영이 악하다는 표현을 했었다.
행동으로 보아선 전혀 악하지 않았으나 내 직관은 그를 의심했고, 그 의심은 관찰로 이어졌다.
그리곤 결론을 얻었다.

"그의 영은 악하다."

RyanHartsell, Original Sin, 2006
덧붙임.
사단의 존재방식과 관련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설혹 잘 알고있다 자신한다 하여도 읽기를 권하고 싶다.
바로 C. S. Lewis「The Screwtape Letters(스크루테이프의 편지)」란 책인데
시중에 보급판이라 하여 5,500원에 나온 책도 있으니 가격에 큰 부담은 없으리라 본다.
아마도 이제까지의 당신이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만났으나 그 존재를 알지 못해 못 만난 꼴이던 사단을 소개받게 될 것이다.
내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읽으라 명하고 싶을만큼,
시급히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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