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9 September 2008

실천적 삶의 부재가 가져온 변절.









My Commentary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도들이 기독교에 관해 더이상 공부를 안 한다는 점이지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무비판적 수용이 좋은 믿음으로 평가되는데 있을 겁니다.
때문에 누가 신뢰를 선점했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편에 서기도 사단의 편에 서기도 하지요.

아래의 어떤 분이 불신자를 사탄의 노예에 빗대어 말씀하셨는데,
사실 저는 웃음이 났습니다.
그 분이
기독교가 계약에 의한 종교란 걸 모르시거나
그 뜻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단 한 번도 숙고한 적이 없으신 분이란 까닭에요.
불신자는 하나님과 계약을 애당초 맺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계약에 종속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계약에 따르자면, 불신자가 아닌 변절(변개)자들이 가는 곳이 지옥이란 곳입니다.
공부만 제대로 했어도,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만 가지고 있었어도
위와 같은 발언은 하지 않았을, 못했을 것이지요.
이런 것이, 아마도, 스테반의 그 같은 유언이 나오게 된 동기가 아닐까요!


우리는 늘 다윗이 사울에게 한 행동에 대해서만 정당하다고 강요를 당해왔습니다.
그러기에 그와 달랐던 사무엘의 사울을 향한 행동은 언제나 무시되고 제외되었습니다.
덕분에 "분별" 과 "경고" 가 "판단" 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지요.
파수꾼이 파수꾼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얘깁니다.
애처로운 일입지요.

종교에서
말이나 이론은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말과 이론 때문에 분열이 생기고 때때로 전쟁도 불사하지만
그렇더래도 종교의 일차적 동기와 목적을 고려할 때 그것은 별반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천적 삶' 에 있으니까요.

지금의 이 사태는,
모든 것이 있는데 '실천적 삶' 만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만한 위치에도 올랐고, 말도 잘하고, 생긴 것도 준수하고, 인기도 있고, 끼도 있으나
나사렛 예수와 같은 '실천적 삶' 이 그들에게 빠져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목사가 먹사가 되고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것은,
다름아닌 예수가 그들 안에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평안하십시오.

betray - Mrs-Durden, My hands betray m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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